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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현하리 464번지
  • 정승기 010-3281-6533

만휴정 晩休亭

 
  • 경북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 1081
  •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173호

관광지 정보

- 분 류 : 누(정)·각
- 지 정 :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173호
- 지정일 : 1986. 12. 11
- 시 대 : 조선시대
- 소재지 :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 1081

이 건물은 보백당 김계행(寶白堂 金係行)공의 정자이다. 1500년(연산군 6)에 건립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중수를 거치면서 다소 변형된 듯 일부는 조선후기 양식을 보이는 부분도 있다.
선생은 조선 초의 문신으로 여러 관직을 역임하다 연산군 폭정을 만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땅으로 낙향했다. 그 후 설못(현 소산2리)가에 조그마한 정자를 지었으나 길옆인 관계로 더욱 조용한 장소를 찾아 이 정자를 건립하였다.
길안면 묵계서원에서 개울건너 산곡간에 들어서면 웅장한 계곡에 반석위로 폭포를 동반한 곡간수(谷澗水)가 흐르는 절경을 이루는 곳에 동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된 정자의 전면쪽 3칸은 삼면이 개방된 누마루형식으로 누각 주위 삼면에는
뒤쪽 3칸은 어칸이 마루로 전면의 누마루와 연접되어 있으며 후벽의 문하부는 궁판이 높직하게 끼워져 있다. 양 퇴칸은 온돌방을 들였는데 방의 앞부분은 일반적인 쌍여닫이 세 살문을 달았으나 마루쪽으로는 띠살무늬의 세짝 들어열개문이 설치되어 있다. 전면쪽을 고스란히 개방하여 툇마루로 구성한 예는 흔하지 않으며, 약계정과 유사한 평면형식을 보이고 있다.
기둥 상부에는 연봉장식이 가미된 2익공양식의 촛가지가 돌출되어 있어 조선후기 작품으로 간주되지만 말기의 번잡한 양식과는 달리 품위를 유지하고 있다.
창방위에는 연꽃을 새긴 화반을 놓았는데 비교적 공을 들여 조각하였다. 상부는 5량가로 대량위에 동자주를 세워 종량을 놓았으며 그 위에 제형판대공을 올렸다.
지붕은 홑처마 팔작으로 처마앙곡과 안허리가 매우 날카로워 정자의 맛을 더욱 살리고 있다.

- 만휴정 이야기

* 내 집에는 보물이 없으니, 보물이라면 오직 맑고 깨끗함이 있을 뿐이다
만휴정은 커다랗고 둥그런 바위를 등에 지고, 물길로부터 조금 안쪽으로 움푹 패여 들어간 공지 안에 서 있다.
만휴정이 등지고 있는 바위는 아래쪽은 상당한 단층면을 이루고 있으나, 위쪽은 밋밋한 곡선을 드러내고 있고, 그 위에는 여기저기 세력이 그리 왕성하지 못한 소나무들이 자리 잡고 있다. 만휴정은 물길 흘러가는 것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그 앞쪽 산허리의 중간쯤을 응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물길의 흐름, 산허리의 흐름과 직각으로 만나는 시선 방향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앞쪽 산허리의 흐름을 따라 만들어져 있는 좁직한 소로와도 90°의 각도로 교차하는 시선 방향을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만휴정에 들어가려면, 오던 길을 버리고 계곡을 건너야 한다. 만휴정에서 길까지는 좁은 다리가 가설되어 있다. 다리는 만휴정의 축대 한끝과 이쪽 길 아래쪽의 솟아오른 바위의 한 면을 잇고 있었는데, 중간에 시멘트 기둥이 하나 있었고, 한 사람이 자유롭게 걸어갈 수 있을 정도의 폭을 갖추고 있다. 노면은 양쪽에 옛날 전신주 같이 검게 기름 먹인 원통형 나무를 걸쳐 놓고 그 사이를 아스팔트로 채워놓은 것이다.
만휴정은 적절하게 차단되어 있는 공간이다. 앞쪽에 담이 없더라도, 만휴정의 아늑함에는 부족함이 없었으리라. 그러니 앞쪽 담의 가설은 사족에 불과하고, 오히려 만휴정이 갖고 있는 허물이라고 하겠다. 그것은 만휴정의 가장 큰 자랑인, 앞쪽을 흐르는 투명한 물과의 만남을 심리적으로 차단하는 효과를 행사하기 때문이다.
만휴정 마루에서는 위쪽으로 계곡의 물이 너럭바위의 사면을 타고 지렁이 몸짓으로 내려와 이룬 소와, 그것이 또 태극의 형상을 지으며 짧은 유영을 한 끝에 아래쪽에 만들어 놓은 소가 내려다보인다.
아래쪽 소의 한쪽을 칼끝처럼 비집고 들어와 사선으로 차단하고 있는 커다란 바위 위에는 ‘보백당만휴정천석’, 그러니까 보백당의 만휴정이 있는 샘의 돌이라는 글자가 횡으로 새겨져 있다. 글자들은 세월에 의해 탁마되어, 끝의 석이라는 글자는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이기도 하다.
마루 영역은 가장자리로 낮은 난간을 둘러쳤고, 마루 위 천장 서까래 아래쪽으로는 여기 저기 현판들이 달려 있다. 동쪽에 있는 방 앞에 달려 있는 나무판에는 “겸손하고 신중하게 몸을 지키고, 충실하고 돈후하게 사람을 대하라.”라는 뜻의 글자가 선생의 유훈이라는 설명을 달고 써 있다.
서쪽 방의 앞 나무판에는 “내 집에는 보물이 없으니, 보물이라면 오직 맑고 깨끗함이 있을 뿐이다.”라는 글씨가 선생의 집 마루 편액(보백당)은 이 뜻을 취한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써 있다.
현판들은 여럿 걸려 있지만, 여기서는 동쪽 끝에 걸려 있는 현판에 써 있는 시를 소개하는 것으로 그치기로 한다. 후에 중수하면서 김양근이 지었다는 시이다.

층층이 급한 물 쏟아져 내리니
물 돌아가는 곳에 저절로 물가마가 생겼구나
십장 높이에 옥처럼 푸른 빛 떠오르니
그 속에 신의 손길이 담긴 물건이로다

폭포와 연못은 가끔씩 널려 있고
너럭바위는 넓게 펼쳐져 있구나
희디 흰 것이 갈아낸 돌과 같으니
가히 백 사람쯤은 앉을 수 있겠도다

앞을 보니 세 개 물가마가 어울려 있어
시흥이 날개 짓으로 솟구쳐 오르네
지천으로 피어난 꽃들은 웃음을 다투고
마치 산 전체가 물 속에 든 형국이로다